마태복음 10장: 제자의 고난, 제자의 영광



1-4절: 열 두 제자를 세우시다

9장 38절에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없다”고 탄식하신 예수님은 열 두명의 제자를 세웁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권세를 입혀 주셔서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나중에 “사도”(2절)로 불립니다. 그분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딱히 열 둘을 세운 이유는 실패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대신할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파기되었다고 선언하십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분은 당신의 피를 통해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했다 “새 계약”을 이루어 하나님의 새 백성을 일으키셨습니다.

어부였던 네 사람(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세리였던 마태 외에 다른 일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열혈당원 시몬”이라 했으니 그는 유다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혁명당원이었을 것입니다. 유다에게 붙여진 “가룟 사람”이라는 말도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활동했던 자객단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로 뽑힌 열 둘은 인간적인 자격 때문에 선정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모으려고 했던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은 인간적인 탁월함에 기초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늘 나라의 복음에 대한 전령이 된 것은 그들의 인간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능력 때문입니다.


2. 5-15절: 제자들을 보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먼저 “이스라엘의 잃은 양”(6절)에게만 가라고 하십니다. 수습 제자로서 일하는 단계에 있으니 친숙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이방인들에게 가겠지만, 먼저 유대인들에게만 집중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철저하게 의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9-10절).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다 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셨으니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질 것으로 믿고 최소한의 여장만 준비하여 떠나라고 하십니다. 또한 더 좋은 거처 혹은 더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도 말라고 하십니다(11절). 그들을 환대하는 사람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고, 박대하는 사람은 그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이니 겸손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처신하라 하십니다(12-15절).


3. 16-33절: 제자가 당할 고난 그리고 약속

제자들을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16절)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니 그렇습니다. 물질을 전부로 알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전하는 것이니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16절)해야 합니다. 거룩하고 진실하고 신실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지만 상황을 잘 분별하고 기민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고난과 박해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17-18절). 그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19-20절). 예수님 자신이 하늘 나라의 복음으로 인해 오해와 박해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스승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제자로 나섰다는 사람들이 그런 운명을 피하리라고는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믿는 것도, 그 복음대로 사는 것도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이 세상에서는 미움과 배척과 무시와 박해를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식구에게서 그런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21-25절).

제자는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제자로서 바로 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만사형통하고 모든 것이 평안할 때 제자는 오히려 긴장해야 합니다. 제자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제자는 어떤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두려움은 제자의 몫이 아닙니다(26-31절). 제자는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승이신 예수님께 인정 받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32-33절).


4. 34-42절: 제자 뒤에 있는 분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습니다(34-39절).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하찮아지고, 그동안 진실이라고 믿고 살았던 것이 거짓으로 보입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믿고 실천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법과 정반대의 삶을 살게 만듭니다. 인생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며 세계관이 달라집니다. 하늘 나라를 통해 절대적인 것을 보았기에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상대화됩니다.

그렇게 믿고 말하고 행동하기에 때로 믿지 않는 가족과 믿는 가족이 원수처럼 갈라지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여는 것은 이렇듯 처음에는 분열과 갈등을 불러 옵니다. 그것이 무서워서 예수님에게 등 돌리고 하나님 나라에 눈 감는 것은 돼지떼의 죽음을 보고 떠나가 달라고 했던 거라사 사람들의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평화는 모두가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함으로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 뒤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또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 하라고 하십니다(40-42절). 보내신 분이 보냄 받은 사람을 끝까지 책임 지신다는 약속입니다.


묵상:

제자가 되고 제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때로 불편과 손해와 거부와 무시와 박해를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열고 그 나라를 믿고 그 나라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그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일이니,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반대하고 거부하고 박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로 살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하늘 나라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 있으며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안다면, 현세적인 불편과 손해와 박해 때문에 돌아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살고 그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 뒤에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버티고 계신다면 아무 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겸손히 그러나 담대히 우리의 믿음을 실천하며 또한 그 믿음을 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 되어라, 제자로 사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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